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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2017.06.30 02:09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언젠가, 당신에게 들려준 적 있었던 것도 같다. 긴 터널의 이야기. 아마도 사람은 지나갈 수 없는 곳이었겠으나 미처 모르고 들어서버린 한참을 걷던 그 어디쯤에선 되돌아나갈 수도 없게 되어버린 그래서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야만 했던 그 새벽의 길디 긴 터널에 대한 이야기. 


너무 무서웠고, 무엇이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게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노래를 불렀고, 그러다가 영영, 이 터널을 지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침묵한 채, 길을 잃은 들짐승처럼 발끝만 보며 걸었던


그 긴 터널 끝에서 내가 먼저 본 것은 새벽의 달이었고, 별은 이미 보이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별을 읽고 길을 찾아낸 들짐승처럼, 새로이 드러난 보도를 따라 다시 걸었다고 그것이 아마 당신 보고 싶은 기분과 닮았다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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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01:56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어쩐지 꿈에, 공을 하나 샀다. 까만 농구공. 사내 몇이 가지고 놀던 그것이 신기해서 들어간 가게여서였다. 어쩐지 주인은 그 공을 팔고 싶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공을 들고 나와 이리저리 튕기며 무척이나 즐거워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깼다. 창밖은 어슴새벽. 나는 눈을 깜빡이며 동그랗고 까만 그 공을 떠올린다. 어릴 적엔 공이 참 흔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데굴데굴 한 시절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회색 담벼락이 하나 떠오른다. 너머엔 나무와 풀이 무성한 잉여지였다. 어찌된 일인지 수년 동안 그곳엔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았었다. 나중에야 붉은 벽돌로 만든 빌라가 들어서기는 했지만 한참 뒤의 일이다. 


그곳엔 인근 학교에서 넘어온 공이 숨어 있었다. 대개 인조가죽이 벗겨서 희어멀뚱한 색으로. 우리는 종종 그러한 공을 찾기 위해, 담을 넘어가곤 했다. 공은 대개 바람이 빠져 있었다. 그것도 좋았다. 동그란 것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우리는 축구도 하고 발야구도 했다. 담벼락 옆에 있는 작은 공터에서다. 한 번은 피구를 했는데, 그 물렁한 것으로 어떤 여자애의 머리를 맞춘 적이 있다. 실수였다. 아이는 울면서 집으로 갔다. 마음이 찌릿했다. 맞아. 걔를 좋아했었지. 누워서 그때의 찌릿함을 생각하다가 웃었다. 다시 곤히 잠들기 직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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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
2017.06.28 01:39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유월이 되면 한두 차례 장대비가 내린다. 어김없는 일이다. 그런 비를 보고 있으면, 대책 없이 무엇이든 참 오래되었지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어김없는 일이다. 그 속에서 우산 없는 사람처럼 막막해지는 것 역시.


아닌 게 아니라 유월의 장대비. 그리고 또 우산을 잃어버렸다. 이번에는 푸른색이다. 그간 사라진 우산들이 내가 알고, 모르는 자리 한구석에 비스듬히 서 있을 것이다. 어떤 날의 나처럼. 퍽 안심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산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물건. 


그러니 한편쯤은 서럽기도 하자고 여겨보는 것은 나의 하잘것없는 습관이다. 서럽다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나는, 어두운 구석에 기대 서서 부유하는 기억을 채보려고 노력한다. 평생 쥐지 못하겠다. 다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것만은 알겠다. 그런 일이 내겐 당신이어서.


우산도 없이,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는 지금에 와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푸른색 우산이 이번에는 어떤 구석을 찾아갈지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초점이 아득해지고 걱정도 감각도 없이 한때의 이야기로 가득할 그곳을 벌써 오래 사랑하고 있다. 갈 곳도 약속도 잊은 채 하냥 없이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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