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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
2017.06.28 01:39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유월이 되면 한두 차례 장대비가 내린다. 어김없는 일이다. 그런 비를 보고 있으면, 대책 없이 무엇이든 참 오래되었지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어김없는 일이다. 그 속에서 우산 없는 사람처럼 막막해지는 것 역시.


아닌 게 아니라 유월의 장대비. 그리고 또 우산을 잃어버렸다. 이번에는 푸른색이다. 그간 사라진 우산들이 내가 알고, 모르는 자리 한구석에 비스듬히 서 있을 것이다. 어떤 날의 나처럼. 퍽 안심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산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물건. 


그러니 한편쯤은 서럽기도 하자고 여겨보는 것은 나의 하잘것없는 습관이다. 서럽다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나는, 어두운 구석에 기대 서서 부유하는 기억을 채보려고 노력한다. 평생 쥐지 못하겠다. 다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것만은 알겠다. 그런 일이 내겐 당신이어서.


우산도 없이,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는 지금에 와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푸른색 우산이 이번에는 어떤 구석을 찾아갈지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초점이 아득해지고 걱정도 감각도 없이 한때의 이야기로 가득할 그곳을 벌써 오래 사랑하고 있다. 갈 곳도 약속도 잊은 채 하냥 없이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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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2017.06.27 00:01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어느 날 저녁 왼눈을 잃었다. 남은 생의 왼편이 지워져버렸다. 어쩐지 이전의 날들도 함께, 조용히. 시야를 잃는다는 것은 소리 없이 공간이 지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 저녁 이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자주 놀란다. 불쑥 나타나는 누군가의 뒷모습, 멈춰서는 자동차나 자전거 그런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죽음이 왼쪽으로부터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곤 했다. 


한편으로 찾아오는 상실감은 이런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왼쪽에서의 당신. 이따금 왼팔에 스치며 존재하는 왼쪽의 당신. 왼쪽에서 나와 함께, 나란히 그리고 조용히 걷고 있는 그런 당신. 웃고 있는지 슬퍼하고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어떤지. 애써 보려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때론 당신을 놓치기도 할 거라는 불안이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걸음을 늦추며 사라져버린 당신을 기다린다. 


올봄에는 다음과 같은 경험도 했다. 꽃잎이 쏟아지던 거리. 우리는 멈춰 있었고 아마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나의 왼편에 선 당신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감정에도 기척이 있구나. 그럴 땐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꽃잎들은 불쑥 오른편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문득 알고 싶어졌다. 나의 기척은 당신 오른편에서 안녕한지. 아니, 이러한 나의 기척을 당신이 알고는 있는지. 그래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나는 돌아보지 않았고 여전히 벚꽃 잎은 쏟아지고 있었고 여전히 당신은 나의 왼편에서. 


그날 이후 나는 왼쪽의 일로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당신을 자꾸 나의 오른편에 두려는 무용한 노력도. 그런 일은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고, 문득 알게 되는 감정의 기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조금씩 알게 되는 일이 아닐는지. 그러나 어느 날 저녁, 조용히 지워진 나의 왼편에 지금 당신은 없다. 확인하지 않아도 당신은 정말 없는 것이다. 어떤 기척도 내게 오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보지 않고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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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의 포스터 입장을 밝히고 사과드립니다
2017.06.23 20:02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역시(譯詩)-유희경의 시를 스페인어로 듣다>의 포스터가 ‘9와 숫자들’의 앨범 <유예> 앨범 재킷과 유사하며, 이는 표절로 의심된다’라는 여러 의견들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사과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저의 잘못입니다. 저는 <유예>의 재킷 디자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포스터 제작 과정에서 이를 알아채내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눈썰미가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기억력 부족 탓도 있을 것입니다. 디자인 작업 중 디자이너와 기획자 사이 필수 과정인 ‘상호간확인(cross check)’은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있는 것일 터입니다. 기획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했다는 점이 무척이나 뼈아픕니다.

‘9와 숫자들' 멤버들께 사과드립니다. 얼마 전 함께 자리를 했던 이의 작업물에서 이러한 점을 발견했으니 당황하셨을 줄 압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저의 부족함 때문이지, 이용한 것이 아닙니다. 재킷을 디자인 하신 디자이너께도 사과드립니다. 창작자에게 있어 이러한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해당 소속사 분들께도 사과를 드립니다. 이미 디자인 수다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셨을 줄 압니다만, 기획자로서 부족함이 있어 심려를 끼쳤습니다. ‘9와 숫자들’ 팬들께 사과드립니다. 아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보다 더 주의하겠습니다. 위트 앤 시니컬을 사랑하시는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청신하고 보기 훌륭한 것들을 만든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그를 좋아해주셨다는 것을 알기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행사의 주최자인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와 위트 앤 시니컬을 믿고 기꺼이 장소를 대여해주신 카페파스텔에게도 사과를 전합니다. 외에도 미처 챙기지 못한 분들이 계실 줄로 압니다. 부디 양해해주십시오.

저는 위트 앤 시니컬과 디자인수다가 함께했던 모든 과정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드리는 사과는 이러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재발 방지에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

위트 앤 시니컬 대표 유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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