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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2017.06.27 00:01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어느 날 저녁 왼눈을 잃었다. 남은 생의 왼편이 지워져버렸다. 어쩐지 이전의 날들도 함께, 조용히. 시야를 잃는다는 것은 소리 없이 공간이 지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 저녁 이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자주 놀란다. 불쑥 나타나는 누군가의 뒷모습, 멈춰서는 자동차나 자전거 그런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죽음이 왼쪽으로부터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곤 했다. 


한편으로 찾아오는 상실감은 이런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왼쪽에서의 당신. 이따금 왼팔에 스치며 존재하는 왼쪽의 당신. 왼쪽에서 나와 함께, 나란히 그리고 조용히 걷고 있는 그런 당신. 웃고 있는지 슬퍼하고 있는지 생각에 잠겨 있는지 어떤지. 애써 보려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때론 당신을 놓치기도 할 거라는 불안이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나는 걸음을 늦추며 사라져버린 당신을 기다린다. 


올봄에는 다음과 같은 경험도 했다. 꽃잎이 쏟아지던 거리. 우리는 멈춰 있었고 아마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나의 왼편에 선 당신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감정에도 기척이 있구나. 그럴 땐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여태 그런 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꽃잎들은 불쑥 오른편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문득 알고 싶어졌다. 나의 기척은 당신 오른편에서 안녕한지. 아니, 이러한 나의 기척을 당신이 알고는 있는지. 그래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나는 돌아보지 않았고 여전히 벚꽃 잎은 쏟아지고 있었고 여전히 당신은 나의 왼편에서. 


그날 이후 나는 왼쪽의 일로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당신을 자꾸 나의 오른편에 두려는 무용한 노력도. 그런 일은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고, 문득 알게 되는 감정의 기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조금씩 알게 되는 일이 아닐는지. 그러나 어느 날 저녁, 조용히 지워진 나의 왼편에 지금 당신은 없다. 확인하지 않아도 당신은 정말 없는 것이다. 어떤 기척도 내게 오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보지 않고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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