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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
2017.03.29 00:15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앓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과 밤의 경계. 아스라한 그림자가, 이것은 지구의 것이 분명한데, 침대 발치가 어두워진 것을 보니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울지도 못할 거면서, 서러워지는 일이란.


병원에 갔으면 되는 거였는데, 가서 주사라도 맞았으면 금방 나았을 텐데 공연히 버텨보고 싶었다. 날씨 탓을 하느라, 그래. 병원 가기엔 날이 너무 좋잖아. 그러니 핑계처럼, 지난 계절 사두었던 해열제가 떠올랐던 거지. 하얀 통 속에 들어 있는 분홍색 알약들.


아무도 없는 집의 아무도 없는 거실을 지나 약상자가 들어 있는 서랍을 열고 한참 찾아 꺼낸 약통 속에는 알약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거짓말 같기도 했고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고작 한 계절 지났을 뿐인데. 이리 많이 아팠나. 내가.


한 계절이 아닐지도 모르지. 어쨌든 지난 나의 병들, 그 흔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니, 그런 일이 몇 번쯤 있었던 것도 같았다는 기시감. 몸살, 열기에 따라오는 환상처럼.


점점, 빛이 걷히고, 어둠이, 어둠과 어울리는 소음이 찾아온다. 아픈 몸으로 마중이라도 나가고 싶다. 모르는 누구라도 맞이하며 엄살을 부리고 싶었다. 이마를 베개에 묻고 잠시 그대로 얌전히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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