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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2017.03.28 13:25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그날, 우리는 저녁에 만났다. 자주 만나는 장소와 시간. 나는 그때도, 지금까지도 그 시간과 그곳을 사랑한다. 오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끌리듯 그리로가서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한동안 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그날,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당신은 내게 메뉴를 정하라고 했고, 나는 화를 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미안했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때 나는 늘, 그게 제일 좋았다. 당신이 이것, 하는 그 순간.


그날, 당신과 나는 공원에 앉아 있었다. 가을인데도, 모기가 있었다. 나는 끝없이 농담을 하고 짓궂은 장난을 쳤다. 당신이 웃는 것을 보고 싶었다. 안개가 있었다. 빛이 산란하여, 온통 흐릴 뿐, 당신이 웃는지 잘 보이질 않았다.


나는 계속계속 그날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다. 당신도 그렇겠지.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날이라서, 올 날이 아니라 가버린 날이라서. 나는 자꾸 그날을 곱씹는다. 그 저녁과 밤.


그날, 당신은 한 그릇 밥도 다 먹지 못했다. 당신은 조용히 걸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피하지 않았고, 가만히 모두 다 들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그날은 그날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작별의 날을 보낸 것이다. 당신은, 참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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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2017.03.28 01:05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당신이랑 걷는 일. 나는 조금 빨리 걷고, 당신은 조금 느리니까 나는 언제나 걸음의 수를 센다. 얼마나 느리게 세면 되는 것인지, 그건 마음이 안다. 생각보다는 빠르고, 생각보다는 느리게. 그러면 당신은 곁에 있다.


누군가 곁에서 걷는 일이라는 것은 참 경이롭다. 살아서 의미가 되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이다. 한여름, 커다란 나무의 아래, 부서질 듯 흔들리는 잎사귀 아래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당신은 내게 준다.


슬쩍, 당신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 그러면 당신은 아마 놀랄 것이다. 놀라고 나서, 비켜설까. 우뚝 멈춰 설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고 말지도 모른다. 마음의 수가 느려진다. 당신이 조금 앞서다가 나를 돌아본다.


아냐, 아무것도. 그런데. 당신과 나의 사이에 바람이 분다. 잎사귀 같은 것들 흔들리고, 나는 그것들보다 당신이 좋다. 새삼 그렇게 생각한다. 새삼 떠오르고 알게 되는 것들은 늘 맞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어, 우기고 싶어지고.


다시 당신과 걷는 일. 마음의 숫자가 하나씩 떠올라, 음악처럼도 들리고, 잠시 돌아본 당신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서. 그래. 당신,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돌아보라, 이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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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017.03.27 15:33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고양이 보실래요? 아, 그럴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으로 나 있는 철문으로 다가갔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크게 혼났었던 일도. 그래서 약간은 고양이가 무섭다는 얘기 역시. 


봄빛의 흔적이 어룽대는 구름 낀 공중, 숨어 있던 베란다, 베란다를 둘러싼 난간, 앞 큰길로 비스듬히 막 지나간 모르는 사람, 거칠어 보이는 시멘트 바닥과 빈 채 남아 있는 사료 그릇 그리고 그녀와 나. 이 모든 것들이 함부로 그려진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없네요. 그래요? 이런 아쉽네. 어디로 갔을까. 바쁜가 보죠. 그렇겠죠. 그런데. 이거 아세요,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래요. 그리고 사람은 두 개. 목숨을 한 개 두 개 이렇게 세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


그녀가 표정으로 먼저 웃고 뒤따라 소리를 낸다는 것을, 사실 나는 몰래 알고 있다. 얼마 전 너무 짧게 잘라 어색하다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귀밑에서 잠깐, 흔들렸다. 나는 이것들을 한꺼번에 보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보고 한 사람은 아예 보지 못하는 시간. 그리고.


언제나 조금 늦게 온다. 내 안 무언가가 주춤,했다. 누군가 양철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무엇이 남았나. 함부로 그려놓은 그림이 조금씩 움직여, 거기에 낱개인 나와 낱개일 그녀가 있었다. 그게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웃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고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동네엔 고양이가 많아요…… 쓸쓸하지는 않겠네요. 누가요. 누구든 말예요. 그럴까요. 네, 그렇겠죠.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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