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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7.03.26 23:43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왜 갑자기, 오래전의 평범한 날을 굳이 하나씩 불러내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어떤 일들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생 아래엔 어떤 각주도 불필요하니까, 더는 괜찮은지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이미 지나간 날들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사람도 있었다. 일기 속 그 사람은 걸어가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이따금 내 곁에 앉았다. 그 사람은 자기 이름을 아주 예쁘게 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예쁘게 쓰는 사람을 믿지 마, 조심해야 해. 그렇게 알려준 건 그 사람이었는데. 내 이름이 그의 이름 쪽으로 기우듬해진다 싶을 때쯤 그는 나를 떠났다. 


써놓고 한참을 본다. 어쩐지 모두 꾸며낸 말들 같다. 기억은 언제나 그렇다. 제멋대로 색을 입히고 온도를 갖게 되며 변한다. 그날의 오후는 어떤 모양의 구름을 날렸더라.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나를 떠난 이유도 그때는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때는 모르고 싶었으나 이제는 알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지. 


잠잠하던 바깥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처량맞기도 하지. 그 소리, 가깝게 들리다가 이내 멀어지며 점점 늘어져간다. 그리고 다시 잠잠한 바깥. 혹시 내가 울던 거였을까. 그때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는다. 사소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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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2017.03.26 15:15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성당 안은 어두웠다. 성당만큼이나 아주 긴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 어쨌든 서로와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다. 너무 멀지는 않게. 신앙이란 건 그런 모양이 아니던가.


나는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 그러니까 그 한 사람은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찾아왔다. 성당만으로 떠오르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그래서 나는 되도록 천천히 천천히 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그랬다. 하나씩 챙기고 담아 어깨에 멨을 때 나는 모르고 마음은 알고 있던 것들이 어둑어둑한 내부를 밝히고 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전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맞잡았다. 이 낯설고 먼 곳의 오래된 성당에서. 촛불처럼, 무한하게 일렁이며. 한참을 나는 그러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오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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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7.03.25 12:34 - 유희왕 위트 앤 시니컬





네가 편지를 쓰는 동안 눈이 내린다. 한 자 한 자 불러와 붙이는 사람처럼, 너는 백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은 조용히 내린다. 바람도 없는 밤. 



사람들은 모두 잠들었다. 너만 제외하고. 너는 모르는 일이다. 너의 마음이 종이를 긁어 수줍은 이야기를 고백하는 동안,



세상이 다 하얗게 변했다. 사람들의 눈썹도 하얗게 변하고, 누군가 부스럭, 이불을 끌어당겼다. 네가 적은 한 단어를 닮은 눈이 방금, 태어나 떨어진다. 



모두가 잠든 이 꿈같은 시간에, 너는 언제쯤 고개를 들 수 있을까. 잊힐 듯, 지금, 눈이 내리고 있는데. 그렇게, 하얀 종이와 파란색 펜 끝이 서로를 속삭여 



너의 이야기가 태어난다. 의심할 수도, 그럴 여지도 없는 순백의 이야기. 그것은 창밖을 닮아간다. 반짝이는 모습으로, 모두가 잠들어버린 바로 그 시간에.



아마 내일, 혹은 모레쯤 당신은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잠들어버렸을 때, 녹아 사라질 모습으로 쓰인. 언제나 기억될 그 이야기를.



-

더는 미룰 수 없어, 오래 준비했던 (사실은 방치했던) 작은 이야기집, <goood night>의 연재를 위트 앤 시니컬 블로그에서 재개합니다. 빠르면 한 달 안에 아직 다 못한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해요. 뜬금없지만, 그래요. 하루에 두 편을 올릴게요. 하나는 써두었던 것, 다른 하나는 새로 써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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